빛 들지 않는 병실, 가만히 앉아 커튼 친 틈새로 새어나오는 햇살을 쳐다보고 있는 류타로. 넓은 1인실 병실이지만 쾌적하기보단 공허한 느낌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몽롱한 눈이 깜박인다.
그때 문을 열고 가운 입은 채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의사가 들어온다. 카에데다. 옆엔 아무도 없이 혼자다.
카에데, 곧장 류타로가 앉은 침대 옆으로 와 묻는다.
카에데: 몸은 좀 어때요.
류타로: (무시한다. 시선만 살짝 카에데 쪽으로 돌렸다가 만다.)
카에데: (꿋꿋이, 굳이 묻는다. 상대의 기분 따윈 생각 않는 듯이. 묻는 말과 비교하면 아이러니다.) 기분은요. 기분은 좀 괜찮나요?
류타로, 이번에도 무시한다. 그러자 카에데, 그냥 누워버리려는 류타로를 붙잡고.
카에데: (류타로의 팔을 세게 잡은 채다. 딱히 흥분하지 않은 표정에 오히려 담담하다 못해 무신경한 투다.) 의사가 묻잖아요. 나 좋으라고 묻나? 환자분 좋으라고 묻지.
류타로, 한 번 크게 떨쳐내려다 실패한다. 카에데는 놔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 상황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치는 류타로. 그러다 결국 입 연다.
류타로: (고개 숙이고 비웃는 것처럼 중얼댄다.) …위하는 척은 일등이지.
카에데: (침묵한다. 류타로의 팔을 여전히 잡은 채다.)
류타로: (고개 든다. 비웃는 표정,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포기한 것 같기도 하다.) 교수님이 뭐라셔? 그 미친 자식, 탈출 못하게 잘 좀 가둬놓고 감시하라고?
카에데: (류타로의 표정을 본다. 살짝 동요가 인다. 손에 조금 힘 풀리고. 아, 나는 선배의 저런 표정이…….)
류타로: (팔을 뿌리치지 않고 오히려 잡힌 팔을 끌어당겨 카에데를 잡아당긴다. 휘청거리는 카에데. 류타로, 이어서 이죽거린다.) 차라리 솔직히 좀 말해. 언제까지 웃기지도 않는 주치의 놀이나 해댈 거야. 어차피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잖,
류타로, 말을 끝맺지 못한다. 카에데가 그대로 류타로에게 엎어지듯 다가가 거칠게 키스한 탓.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온다. 류타로는 의외로 밀쳐내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딱히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수동적으로 키스를 받는 포지션이 된다.
한참 뒤 입을 떼어내면, 류타로가 울고 있다. 맺힌 눈물이 떨어진다.
카에데: (류타로의 얼굴을 본다. 당신은 불량품으로 태어난 주제에 당신이 망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당신 자신에게조차. 하지만 나는 당신의 그 망가진 점을 사랑한다. 내겐 당신의 문제점이 너무도 사랑스러운걸.) …선배. (웃는다. 왜 이제야 부서져내리나요. 아, 그래. 나는 계속 간절히 기다려왔던 거야. 이 붕괴의 순간을.) 사랑해요.
카에데, 충동적으로 고백의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아주 오래 기다렸던 말처럼 느껴진다. 이어 눈을 감는 류타로. 병실이 다시 조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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